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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도 덕질이다

by 히 루 2025. 6. 2.

패션도 덕질이다
패션도 덕질이다


스타일로 취향 커뮤니티를 만든 사람들
“이 옷을 입으면, 같은 덕후끼리 눈빛이 마주친다.”

 

덕질의 도구로 진화한 패션: 옷으로 말하고, 옷으로 모인다

“이거 어디서 산 거예요?”
“혹시 그 밴드 좋아하세요?”
“저도 그 게임 해요!”

요즘 스트릿 패션에는 말 걸고 싶게 만드는 룩이 있다.
특정 밴드 티셔츠, 고전 애니 캐릭터 프린팅, 희귀한 콘서트 굿즈 가방, 인디 게임 그래픽이 들어간 후드 등.
이제 옷은 단지 ‘멋있어 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취향을 드러내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과 연결되는 언어가 되었다.

MZ세대에게 패션은 더 이상 “옷을 잘 입는 법”이 중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입을 수 있을까”,
“이 옷을 통해 누구와 이어질 수 있을까”가 중요해졌다.

이 흐름은 덕질 문화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팬덤은 더 이상 온라인 커뮤니티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스타일링과 소비 습관으로 확장되고 있다.
‘무엇을 소비하는가’보다 ‘어떻게 드러내는가’가 핵심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아이돌을 조용히 덕질했다면,
지금은 그 아이돌 굿즈 티셔츠를 패션 아이템으로 멋지게 소화해 SNS에 올린다.
이를 본 또 다른 팬은 DM으로 말을 걸고,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긴다.
이런 연결은 브랜드 없이도, 유행 없이도, ‘취향’만으로 가능하다.

 

취향 기반 스타일의 종류들: 음악, 애니, 게임, 크루, 그리고 나

① 음악이 패션이 될 때: 밴드 티, 콘서트 룩, 팬텀웨어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평범하지만, 어떤 밴드를, 어느 시대의 어떤 스타일로 좋아하는가는 매우 개별적이다.
요즘 MZ세대는 록밴드 티셔츠를 단지 소장용으로만 두지 않는다.
오버사이즈로 입거나, 슬랙스에 포멀하게 매치하거나,
빈티지하게 리폼해 ‘내 취향이 깃든 아이템’으로 만든다.

특히 팬텀웨어(Phantomwear)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밴드나 게임,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든
‘가짜 팬 티셔츠’ 형태의 브랜드 디자인을 의미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덕질의 감성을 패션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다.

② 애니와 게임: 코스프레와 리얼웨이 사이의 경계 허물기
예전에는 애니 굿즈 티셔츠를 입으면 ‘오타쿠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90년대 일본 애니 캐릭터, 2000년대 초 레트로 게임의 그래픽,
도트 이미지나 픽셀 아트 등이 프린트된 의류가
Z세대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심지어 ‘하프 코스프레’라는 말도 생겼다.
의상은 일상복이지만, 소품이나 프린팅만큼은
철저히 특정 캐릭터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형태다.

예:

《이누야샤》 컬러 팔레트를 차용한 룩

포켓몬 ‘뮤’만 잔뜩 들어간 톤온톤 코디

인게임 복장을 실루엣만 따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

이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현실로 가져오는 행위다.

③ 스트리트 크루와 감정 공동체: 브랜드보다 사람들이 중심
패션을 매개로 활동하는 소규모 크루가 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닌, 취향이 맞는 친구들끼리 만드는 감성 크루다.
이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진 않지만,
비슷한 취향의 빈티지, 스니커즈, 리폼 아이템, 아트워크를 공유한다.

서울의 홍대, 대전의 으능정이, 부산의 서면 등
지역마다 독특한 커뮤니티와 룩이 생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은 종종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목적은 돈이 아니라 “우리 감정을 시각화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나는 이 옷을 왜 입는가’라는 질문이 스타일의 시작이다

노빠꾸 코디, 빈티지 마니아, 덕질 기반 패션, 플레이웨어, 리폼 룩…
요즘 스타일은 너무 다양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흐름이 있다.

바로,

“이 옷을 입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 멋있다는 것.

과거에는 패션을 잘 입으려면 트렌드를 빨리 읽고,
비율과 체형을 고려한 스타일링을 해야 했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누군가는 ‘초딩 시절 팬심’으로 동방신기 티셔츠를 입고,
누군가는 ‘올드 힙합에 대한 오마주’로 벙거지와 저지, 체인을 걸친다.
그걸 보고 우리는 말한다.

“저 사람, 자기 취향 되게 확실하다.”

패션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입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취향은 그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언어이고,
그 언어는 누군가에게는 밴드 티셔츠, 누군가에겐 픽셀 게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동인 일러스트가 프린트된 머플러일 수 있다.

덕질은 오랫동안 '숨어야 하는 것', '숨기고 즐기는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드러낼수록 연결되고, 입을수록 나를 설명하는 것.
그래서 오늘날의 덕질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시각적인 정체성이 되었다.

 

마무리: 패션은 커뮤니티다

오늘날 옷은 단지 입는 것을 넘어,
사람을 만나게 하는 미디어가 되었다.
특정 스타일, 특정 티셔츠, 특정 색 조합 하나만으로도
같은 세계를 좋아하는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덕질 기반의 스타일은 늘 ‘왜 저걸 입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하지만 그 질문의 끝에는 항상 똑같은 답이 있다.

“그게 나니까요.”

그리고 그 답이 멋있는 시대다.
패션은 결국, 나를 사랑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 도구다.
그래서, 패션도 덕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