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걸 다시 입는다고?” 하고 놀랄 새도 없이, 유행은 되돌아온다.
오늘은 10년 전 '촌스럽다'고 했던 패션 아이템들이 다시 재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한때의 ‘오글거림’, 지금의 ‘핵인싸템’
10년 전,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말이 있다.
“야, 그거 완전 촌스럽다.”
특히 패션에선 더했다. 스키니 진의 몰락, 통굽 운동화의 퇴장, 과장된 어깨 퍼프나 형광 컬러 티셔츠는 어느 순간부터 ‘절대 다시는 입지 않을 것 같은’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것들을 다시 입고, 심지어 SNS에 자랑까지 한다. 어떻게 된 걸까?
예를 들어, 와이드 팬츠는 한동안 "펑퍼짐해서 다리가 짧아 보여"라며 외면당했다. 대신 발목이 붙을 만큼 타이트한 스키니 진이 대세였다. 그런데 지금은 와이드 팬츠가 오히려 체형 보완의 필수템이고, 스키니 진은 ‘촌스러움’의 상징이 됐다.
같은 이야기를 크롭 탑, 청청 패션(데님 on 데님), 로우라이즈 팬츠 등에서도 반복해서 볼 수 있다. 한때 ‘중2병’ 같다는 말을 들으며 구박받던 아이템들이, 이제는 "요즘 힙한 애들"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결국 유행은 마치 회전목마처럼 돌고 도는 것 같다. 아니, 그냥 도는 게 아니다. 그 시절과는 다른 해석을 달고 다시 온다. 똑같은 청자켓이어도, 2023년엔 레이어드된 크롭 디자인으로, 2024년엔 워싱과 패치워크를 강조한 스타일로 리메이크된다. 촌스럽다던 아이템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그저 반복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행은 왜 돌아오는가: 심리학과 시스템의 문제
패션이 되돌아오는 데에는 단순한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소비자의 심리와 산업 구조가 있다.
먼저, ‘노스탤지어 마케팅’(향수 소비)의 힘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입었던 스타일, 학창 시절에 한참 유행했던 아이템을 다시 보는 순간, 소비자들은 향수를 느낀다.
예를 들어, 90년대생에게는 2000년대 Y2K 패션이 바로 그런 대상이다. 벙벙한 청바지, 반짝이는 립글로즈, 컬러풀한 헤어핀 등은 "촌스럽다"는 인식과 동시에 "저 때 참 재밌었지" 하는 감정을 자극한다. 그 감정은 소비로 이어진다.
또한 패션 산업 자체의 순환 구조도 원인 중 하나다. 패션 브랜드는 매 시즌 새로운 제품을 내야 하고, 참신함을 유지하려면 결국 예전의 디자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기엔 시간도, 자원도, 리스크도 크기 때문에 과거의 유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향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SNS와 밈(meme)의 영향력이다. 과거엔 '촌스럽다'는 낙인이 찍히면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밈’이 되어 퍼진다. 과거 패션을 ‘패러디’하듯 즐기며 입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게 트렌드가 된다. 일종의 아이러니 패션(ironic fashion) 문화다. 촌스럽다고 말하면서, 그 촌스러움을 입는 것. 패션은 더 이상 ‘멋’만이 아닌, ‘놀이’가 되었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아이템도, 결국 돌아온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아이템이 돌아올까? 지금은 ‘절대 안 입는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들이지만, 5년, 10년 후엔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예를 들어 요즘 유행에서 철저히 배제된 허리까지 오는 반팔 카라티, 가느다란 벨트가 달린 2000년대 미니스커트, 베레모, 단색 스포티 점퍼 같은 것들. 지금의 10대나 20대에게는 너무 어중간하고 과거틱하게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그 ‘이상함’이 매력이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실제로 요즘 패션계를 보면, 미국 중산층 패션(‘노멀코어’), 아저씨 패션(‘언클코어’), 못난이 패션(‘어글리룩’) 등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에는 기능성을 위해 만든 옷들이 지금은 반문화적 태도, 위트 있는 감성, 반항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유행의 중심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비껴가는 센스가 더 매력적이다.
결국 패션은 단순히 '멋지다/촌스럽다'로 나눌 수 없다. 그 시절의 맥락, 지금의 문화 코드, 그리고 나의 해석이 맞물릴 때, ‘촌스러운 옷’은 세상에 하나뿐인 스타일이 된다.
그러니 앞으로는 무심코 “야, 그건 진짜 아니야”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해보자.
“정말 아닌 걸까, 아니면 아직 시대가 준비되지 않은 걸까?”